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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최무선 |
| 요약 |
<<본관은 영주(永州:지금의 永川). 아버지는 광흥창사(廣興倉使) 동순(東洵)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본래 기술에 밝고 병법(兵法)을 좋아했으며,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 그 제조법 연구에 골몰했다. 우리나라에는 늦어도 14세기 전반까지는 화약과 화포(火砲)가 전래되어 있었다. 그런데 화약의 제조에 있어서 염초(焰硝)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즉 진토(塵土)에서 염초를 자취(煮取)해내는 법이 화약제조 및 화기발달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원나라나 명나라는 그 방법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고려에는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중국상인들의 왕래가 잦은 무역항 벽란도에 가서 중국에서 오는 상인들에게 그 방법을 묻던 중, 강남(江南)의 상인 이원(李元)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염초자취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일설에는 최무선이 원나라에 직접 가서 배워왔다고도 하는데, 많은 노력 끝에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뒤 조정에 여러 번 건의하여 마침내 1377년(우왕 3) 화통도감(火筒都監)이 설치되면서 그 제조(提調)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화약은 매우 빠르게 발달했다. 화약 외에도 대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筒) 등의 총포와 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 등의 발사물, 그밖에 질려포(疾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주화(走火)·촉천화(觸天火) 등 갖가지 화기와 이런 화기를 실을 수 있는 전함이 만들어졌다. 또 화기발사의 전문부대로 보이는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었다. 1380년 왜선 500여 척이 전라도 진포(鎭浦)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자, 부원수(副元首)로서 도원수(都元首) 심덕부(沈德符), 상원수(上元首) 나세(羅世)와 함께 전함을 이끌고 가서 처음으로 화통·화포 등을 사용하여 왜선을 격파했다. 그뒤 1383년 남해의 관음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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