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나석주 |
| 요약 |
<<<<<<<황해도 재령(載寧)사람이다. 그는 재령 명신학교(明新學校) 2학년을 수료하고 농사일을 하다가 23세 때 만주로 건너가서 4년간 군사훈련을 받고 27세때에 귀국하여 황해도 겸이포(兼二浦)에서 표면상 점포를 경영하면서 이면으로는 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을 규합하여 상해의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결사대를 조직하여 한대홍(韓大弘)과 같이 평산군(平山郡) 상월면(上月面) 주재소 일경과 상월면장을 사살하였고 다시 안악군(安岳郡) 친일파(親日派) 부호를 사살한 후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1920년 9월 22일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으로 활약하다가 하남성(河南省) 감단군관학교(邯鄲軍官學校)를 졸업하고 중국군 장교로 있으면서 보안육군강무당(保安陸軍講武堂)에 적을 주었으나 이때 봉직전(奉直戰) 관계로 퇴학하였다.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한 그는 1926년 4월 천진(天津)으로 가서 김창숙(金昌淑)과 상면하여 김창숙으로부터 조국의 강토와 경제를 착취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와 조선은행(朝鮮銀行)·식산은행(殖産銀行) 등을 폭파하여 학정에 시달리는 동포를 구해 달라는 권고를 받고 이를 실해하기로 결심하였다. 동년 12월 26일 그는 종국인 노동자로 가장하고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여 지부이통환공사의 역부로 가칭하고 천진(天津)에서 상선 융극호(戎克號)에 편승하여 위해위(威海衛)를 거쳐 이튿날 27일 인천에 도착하였다. 그는 28일 오후 중국청년으로 변장하고 동척(東拓)으로 가서 회사의 상황을 정찰한 다음 그 길로 남대문통에 있는 식산은행(殖産銀行) 일반 통용문으로 들어가 대부계 철책 앞에 폭탄 한 개를 던졌다. 다시 오후 2시 동척(東拓)으로 가서 수위실 책상에서 무언가 쓰고 있던 조선부업협회(朝鮮副業協會) 잡지기가 고목길강(高木吉江)을 사살하고 2층으로 올라가다가 총소리를 듣고 놀라 따라 올라오던 사원 무지광(武智光)을 쏘아 쓰러 뜨리고 토지개량부(土地改良部) 기술과장실로 들어가 차석 대삼태사랑(大森太四郞)과 과장 능유>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