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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이황과 정약용 교육사상 비교 |
| 요약 |
한 나라의 교육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인간문제를 반영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제도이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혹은 소극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 선인의 교육사상을 더듬어 보고 그들의 교육사상이 현대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수많은 석학들 중에서도 특히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의 교육사상을 비교해 보고, 이들의 교육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 두 학자 모두 그들이 남긴 학문과 사상이 우리의 정신문화에 끼친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위대한 교육자란 점에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들의 다방면에 걸친 업적 가운데 교육사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그들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의 사회와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시사를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들의 교육사상을 논함에 앞서 이들의 교육사상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생애와 학문적 배경을 먼저 고찰해 보는 것이 교육사상을 이해하는 데 논리적인 순서라고 생각되므로 여기서는 각 인물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 퇴계 이황
1. 생애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진시(辰時),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황(滉), 자는 경호(景浩)인데 어릴 때 이름은 서홍(瑞鴻)이라고 하였다. 그의 관향은 진보(眞寶), 일명 진성(眞城)이다. 12세때 첫 번이자 마지막 유일한 스승인 그의 숙부 우에게 논어를 배웠다. 20세 때는 주역을 읽고 그 뜻을 찾아내기에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며 이로 인하여 평생의 고질이 되었다는 일화는 청년 시인 철학자의 모습을 알려주는 예이다. 21세에 진사 허찬의 딸과 결혼하여 23세에 아들을 낳고 이 해에 상경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의 진사시에 수석,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며 이듬해 봄(28)에는 진사회시에 2등으로 뽑혔다. 이 해 둘째 아들 채가 났으나 허씨 부인을 상배하고 30세에 봉사 권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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