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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성산자산성 |
| 요약 |
<<698년 대조영 등이 이해고와의 천문령전투에서 승리하고 건국의 터를 잡은 곳은 지금의 지린성 조선족 자치주 둔화지역이다. '신당서'는 이후의 상경(上京)과 비교하여 이곳을 '구국(舊國)'이라 한다. 대조영이 당의 추격을 피해 첫 수도로 삼은 '구국'은 송화강의 큰 지류인 목단강 상류에 위치한다. 그들이 처음 웅거하였다는 '동모산(東牟山)'은 지금 둔화시 서남쪽 시엔루샹(賢儒鄕) 성산자산성으로 본다. 성산자란 '산 위에 성터가 있는 곳'이란 뜻으로 그곳 마을도 '성산자촌'으로 북방에 이러한 지명이 많다. 옌지(延吉)에 있는 성자산이나,지안(集安)의 산성자산(山城子山) 등이 그렇다. 그런데 오늘날 북방에는 '동모산'이라는 지명이 전혀 없고 발굴도 완벽하지 못해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곳이 동모산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즉 이곳은 방어적 산성일 뿐만 아니라 이 산과 연결된 목단강(牡丹江) 건너 영승(永勝)유적에 발해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으며,또 이곳에서 동북으로 10㎞ 정도에 발해 왕족과 평민들이 묻혀 있는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산의 동쪽 4㎞ 지점에는 목단강 상류가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고,산의 북쪽을 끼고는 사료에 보이는 오루하(奧婁河),즉 대석하(大石河)가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다. 남아 있는 성터는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둘레가 2㎞ 정도이고 성곽은 흙과 모래를 섞어 쌓았다. 해발 600m의 나지막한 산성인 이곳은 사면이 탁 트여 있어 외부인의 동태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대석하(大石河)는 북쪽 방어선이다. 그런데 대조영이 왜 평양이 아닌 이곳을 건국 터로 삼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고구려 부흥국이라면 평양을 목적지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조영은 그의 출신 지역과,고구려 멸망 과정에서 노출된 평양의 군사적 약점으로 인하여 결코 평양을 첫 수도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TV사극에서 그린 것처럼 대조영이 평양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없어 부인도 인정도 할 수 없다). 대조영의 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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