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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거란의 80만 대군 격파 |
| 요약 |
<서희는 거란 80만 대군을 어떻게 물리쳤나 거란군은 속도전에 강하다. 단숨에 수도만 장악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무조건 남진에 주력했다. 그러나 거란의 전술이 고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광활한 평원에서의 싸움과 산악지대에서의 싸움은 달랐다. 고려는 거란전에서 고려의 청야전술을 이용했다. 고려군이 퇴각할 때 들판에 불을 질러 적이 곡식을 군량미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대는 바야흐로 11월. 날씨는 추워지고 거란은 군량미 확보조차 어려운 위기에 부딪쳤다. 이 시점에서 가란 장수 소손녕은 담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장에서 미묘한 전세의 변화가 담판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서희의 담판 후, 거란이 고려에 땅을 내주고 선물까지 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북경에 있었다. 고량강(高梁江) 주변은 거란과 송나라가 30년에 걸쳐 싸운 역사의 현장이다. 북경 일대는 대대로 한족의 땅이었다. 그러나 당나라 말 혼란기에 북경은 거란으로 넘어가게 된다. 당이 멸망하고 한족을 통합한 나라는 송이다. 송나라는 북경 지역을 회복해 한족의 영토를 되찾고자 했다. 북경 지역에서 송과 거란은 운명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내몽고 자치구 지역에서 살고 있던 거란은 4세기만 해도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민족이었다. 그러나 10세기 초 중국의 혼란기를 틈타 여러 부족을 통일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이때 중국에서 거란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한다. 바로 송나라다. 중국 대륙을 장악하려는 거란과 송나라의 충돌은 불가피했고 북경을 중심으로 한 연운 16주가 그들의 전장이었다. 송 태조는 건국 초기부터 한족의 통일제국을 목표로 삼고 북경 일대를 회복하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북경을 침략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송나라는 거란을 위협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외교정책에 눈을 돌린다. 거란과 송나라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다른 나라를 이용할 방법을 찾게 된다. 이때 중요하게 부각된 나라가 바로 고려였다. 당시 동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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