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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대모신 |
| 요약 |
<대모신 경주의 선도산엔 운제부인(雲帝夫人)에게 제를 올렸던 제단터(聖母祠)가 남아 있다. 운제부인은 신라 2대 남해왕의 왕비로 신비한 능력이 있고 선도산에 산다 해서 선도성모로 불렸다. 이 제단터에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운제부인과 이 제단터의 중요성은 무엇일까? <삼국유사>나 <동경잡기>에는 제사 관계 기술이 가장 첫머리에 나타나는데 진평왕 조에는 비구니가 절을 지으려 할 때 영험으로 도와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사회에서 출산을 담당하는 여성이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여성이 신모로 추앙받기도 하며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라에서는 운제부인뿐 아니라 박혁거세의 아내인 알영부인, 박제상의 아내인 치술부인도 국신으로 섬겼다. 실제로 여성이 국가의 제사를 직접 주관한 경우도 있는데 "제2대 남해왕이 시조인 혁거세의 사당을 만들고 그후 왕의 누이인 아로가 제사를 주관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백제는 어떠했을까. 고구려에서는 말기까지 추모왕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부여신으로 숭배했다. 유화는 몽고에서 샤먼의 나무로 통하는데 이 유화부인이 고구려 건국의 어머니로서 농업, 물, 생명의 여신으로 추앙되었다. 여성을 신으로 숭배하던 전통은 백제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추모왕의 부인인 소서노는 비류.온조 두 자식을 도와 백제 건국에 크게 기여한다. 이런 소서노가 죽자 백제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며 도읍을 옮긴다. 그리고 사당을 세운 후 국모로 숭배한다. 세 나라에 이런 전통이 남아 있었던 것은 고대사회에서 여성의 신분이 결코 낮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전통은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 초기까지만 이어진다. 여성숭배 전통이 유독 신라에서만 오래 지속된 이유는 지정학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좋은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는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자연히 선진 문물을 비롯한 왜래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늦었다. 때문에 전통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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