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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무역항 늑도 |
| 요약 |
<2천년 전의 국제무역항. 늑도 인골의 보존상태는 2천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바로 몇 해전의 것처럼 양호하다. 조개껍데기의 알칼리 성분이 산성토양을 중화시켜 인골의 부식을 막고 뼈를 단단하게 한 덕분에 2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신을 옆으로 눕히고 팔과 다리를 꺾어 잠잘 때와 같은 모습으로 안치했던 것이다. 몸을 구부렸다 해서 이런 형식을 굴장이라 부른다. 굴장 형태도 다양해서 팔 다리를 모두 구부린 것, 팔만 구부린 것, 혹은 구부린 관절 아래 돌을 맏친 것 등이 있다. 이런 굴장의 의미는 죽음에 대한 고대인의 두려움 혹은 사람이 태어날 때의 형상, 곧 원래의 자연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 등으로 풀이된다. 굴장은 일본에서도 발견되는데 가장 이른 것은 우리의 신석기에 해당하는 죠몽시대라고 한다. 굴장 외에 시신을 엎어 묻은 복장도 있다. 묘광선(무덤을 위해 땅을 판자리의 윤곽) 등 장례 흔적이 분명해 앞으로 그 의미를 연구해봐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사천 앞바다에서 5~6노트를 넘던 유속이 늑도 쪽으로 오면 2노트 수준으로 현저히 떨어진다. 당시의 배들은 조류가 강한 대방 수도를 피해 늑도 쪽으로 항해했을 것이다. 급한 물살을 피해 갈 수 있는 안전한 해로와 배를 정박하며 다음 항해를 준비할 수 있는 포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늑도는 그렇게 주변 조류를 이용해 방어와 교역을 동시에 이뤄내며 풍요한 천혜의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천년 전 한.중.일간의 교육이 활발했던 늑도는 항해술이 점차 발달하고 교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국제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더 큰 배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큰 항구가 그 역할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철기문화가 본격화되면서 정치.경제의 중심이 낙동강 일대(가야)로 옮겨간 것도 늑도가 수명을 다한 원인이다. 하지만 늑도는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고대 항로와 이를 통한 국제교역을 확인시켜준다. 지금은 남해안 다도해에 묻혀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은 섬이지만 2천 년 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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