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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도이장가 |
| 요약 |
< < <예종이 1120년(예종15) 왕이 서경(西京:平壤)에 행차하여 팔관회(八關會)가 열렸을 때, 그 자리에 개국공신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의 가상희(假像戱: 가면극)를 보고, 왕이 두 장군에 대한 추모의 정을 이기지 못하여 지은 노래이다. 이두식(吏讀式) 표기로 된 향가(鄕歌) 형식의 노래로, 8구체(句體)를 4구씩 2분하여 지었다. 《평산신씨 고려대사장절공유사(平山申氏高麗大師壯節公遺事)》에 전하는 가사를 보면 “① 主乙完乎白乎 心聞際天乙及昆 魂是去賜矣中 三烏賜敎職麻又欲 ② 望彌阿里刺 及彼可二功臣良 久乃直隱 跡烏隱現乎賜丁”인데, 이것을 의역(意譯)하여 “님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한, 그 정성은 하늘 끝까지 미치심이여, 그대의 넋은 이미 가셨지만, 일찍이 지니셨던 벼슬은 여전히 하고 싶으심이여, 오오! 돌아보건대 두 공신의 곧고 곧은 업적은 오래오래 빛나리로소이다”로 풀이하였다. 이 노래는 《정과정곡(鄭瓜亭曲)》과 함께 향가 형식의 노래가 고려 중기까지 남아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신숭겸과 김낙은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왕건을 대신해서 죽은 공신이다. 그 공을 높이 치하해서 태조 때부터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다. 태조가 팔관회를 열고 여러 신하와 함께 즐기다가 두 공신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풀로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복식을 갖추고 자리에 앉게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두 공신이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생시와 같이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술은 누가 두 공신의 가면을 스고 허수아비춤을 추는 놀이를 했음을 알려 준다. 그런 풍속은 신라 이래로 오랜 유래를 가진 것이었는데, 두 공신의 일을 연유로 해서 팔관회의 절차에 편입된 다음에 예종 때에도 되풀이되었다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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