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고려천태종의 성립 |
| 요약 |
<<<<고려 천태종의 개조 대각국사(大覺國師 1055∼1101)의 명(名)은 후(煦), 자(字)는 의천(義天)이며, 문종(文宗)의 제 4 왕자이다. 문종 9년(1055) 9월 28일 탄생한 국사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민하여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칭송을 받았다. 국사는 부왕(父王)의 뜻을 받들어 11세에 출가하여 문종 19년(1065) 5월 14일 경덕(景德)국사를 스승으로 득도하고 경덕국사와 같이 영통사(靈通寺)에서 수업하였다. 대각국사께서 송나라에 들어간지 1년 2개월이 된 선종(宣宗) 3년 6월에 불교경전의 장소 3000여권을 구득하여 귀국했다. 선봉사(仙鳳寺) 대각국사비에 의하면 국사가 귀국하자, 선종소속의 덕린(德麟)ㆍ익종(翼宗)ㆍ경란(景蘭)ㆍ연묘(連妙) 등 여러 운수납자와 학승이 국사의 강하에 와서 천태의 교관(敎觀)을 듣고 개종하여 제자가 되었다. 인예태후(仁睿太后 대각국사의 모후)는 일찍이 뜻한 바 있어, 송도 서남쪽에 터를 잡고 큰 절을 창건하다가 준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숙종(肅宗국사의 셋째 형)이 즉위하여 공사를 마치고 국청사(國淸寺)라 명하고 국사를 주지로 하여 천태교관(天台敎觀)을 강강설케 하였다. 국사는 그 개강사(開講辭)에서「생각컨대 우리 동국에 불법이 전한지 7백여년에 비록 여러 종이 다투어 연양(演揚)되었으나, 천태일종(天台一宗)이 천명되지 않았다. 옛적에 원효보살이 앞서서 찬양하였고 제관법사는 뒤에 선양하였지만 인연이 성숙되지 않아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도다. 교법의 유통됨이 그 기다림이 있는 듯 하도다」라고 하였다. 또한 인예태후가 국청사를 창건하던 내력과 국사가 바다를 건너가 구법하던 일, 천태교관을 전해받고 천태지자대사 탑하에서 발원한 일, 그리고 이제는 평생의 뜻을 펴게되었다는것을 피력하였다. 국사께선 세수 47세라는 짧은 생애이지만 천태종을 개종한 그의 업적은 매우 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천태종이란, 법화경의「회삼귀일(會三歸一)」「일심삼관(一心三觀 )」등의 사상을 중심으로 중국 불교의 혜성인 지자(智者)대사에 의하여 개창된 종>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