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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탄연 |
| 요약 |
<탄연 (坦然 ; 1070~1159)> < 고려의 승려 ·서예가로서 속성은 손(孫)이며 호는 묵암(默庵)이다. 그리고 시호는 대감(大鑑)이고 경남 밀양(密陽)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교위(校尉) 숙(肅)이며, 어머니는 안씨(安氏)이다. 1085년(선종 2)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세자(世子:睿宗)를 보도(輔導)하다가 1088년 몰래 궁중을 빠져 나와 안적사(安寂寺)에서 승려가 되어 광명사(廣明寺) 혜소국사(慧炤國師)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 후 각지를 다니며 참선과 교학을 연구하다가 1105년(숙종 10) 승과(僧科)에 급제, 1106년(예종 1)에 대사(大師), 1109년 중대사(重大師), 1015년 삼중대사(三重大師), 1021년 선사(禪師)에 올랐다. 1023년(인종 1) 첩수가사(帖繡袈裟)를 하사받고 1029년 보제사(普濟寺) 주지로서 법회를 열었다. 1032년 대선사(大禪師)로서 왕의 자문역이 되고 1046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1047년 의종이 즉위한 후에는 예우가 더욱 극진하였으나 1048년 은퇴하고 단속사(斷俗寺)에 들어가 계속 선교(禪敎) 중흥에 이바지했다. 즉, 탄연은 당시 거사(居士)로서 귀족불교의 성향을 띠고 있던 이자현(李資玄)의 문하에서 〈능엄경 楞嚴經〉에 근거한 선을 공부했다. 또한 일찍이 자신이 지은 〈사위의송 四威儀頌〉·〈상당어구 上堂語句〉를 송나라 개심(介諶)에게 보내어 인정을 받았으며, 이때 개심의 제자인 계환(戒環)·도응(道膺) 등과도 서신을 통해 도우(道友)가 될 것을 약속했는데, 이들은 모두 송대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 승려들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조계종 승려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특히 정통 임제종 승려를 자처하여 고려 중기 선종을 부흥시키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격조 높은 시문을 남겼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김생(金生)에 버금가는 명필로서 왕희지(王羲之)의 필체를 따랐다. 국사(國師)에 추증되고 단속사에 대감국사비(大鑑國師碑)를 세웠으나 망실되고 그 탁본이 전할 뿐이다. 작품에 《청평사문수원중수비(淸平寺文殊院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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