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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살수대첩 |
| 요약 |
< < <수문제가 죽고, 그의 두번째 아들인 수양제가 왕위에 올라갔다. 수 양제는 우리가 잘 알듯, 폭군중의 한명이다. 대운하를 건설하고, 궁궐을 호사롭게 짓는가하면, 고구려를 무려 세번이나 침략하고, 첫번째 전쟁은 무려 100만 대군이 넘는 군대를 출진시켰다.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농민 반란으로 인하여, 수 양제는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근래의 평가는 수 양제는 뛰어난 임금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가 건설한 대운하의 경우, 강남과 화북의 거리를 단축시켜, 중국 경제 발전에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군이기 보다, 시대를 잘못 현군이 아니었는가 추측하기도 한다. 그가 폭군이라고 낙인찍힌 이유중에 하나가 자기 아버지인 수 문제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미 공공연한 역사로 전해지지만, 그게 확실히 일어났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반란을 일으킨 쪽이 자신의 명분을 위해서, 일으켰을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어 조선의 광해군도 오랫동안 자기 아버지인 선조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물론 사실에 근거한 내용은 아니지만, 승자인 서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표되었고, 야사에서는 그게 사실인양 유포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양광은 둘째 아들이었고, 형인 양용이 있었다. 그 양용을 제치고, 올라갔다는 것은 양광이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님 양용이 임해군처럼 무능력자여서 그런지 모른다. 사실 양광이 수나라 창업에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고, 그걸로 태자에 오른 것이다. 역사에서는 양광이 태자에 오르기 위해 양용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하나, 그 역사를 적은 것은 수나라 양제가 아닌 수양제를 죽인 당나라 사람이니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암튼 수 양제는 왕위에 올라 돌궐로 찾아간다. 당시 돌궐의 왕인 계민은 양제의 사위였는데, 당시 고구려 사신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양제에 놀란 계민은 숨기지 못하고, 고구려 사신을 보여준다. 자기에게는 코빼기는 전혀 비치지 않고, 돌궐에게 사신을 보내는 고구려 사신을 쳐다보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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