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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후삼국의 분열 |
| 요약 |
통일 신라는 왕위다툼이 이어지면서 왕권이 약해지고 이를 틈타 후백제, 후고구려, 신라로 다시 나누어졌다. 이 때를 후삼국 시대라고 한다.
[배경]
통일 신라 말기에 통일을 이끈 신라를 반대하는 세력이 늘면서 왕의 힘이 약해졌다. 나라돈이 부족하여 농민은 세금을 많이 물게 되었으며 이에 반발한 농민 항쟁이 전국적으로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그 중 사벌주(지금의 상주)의 원종과 애노, 북원(지금의 원주)의 양길, 완산주(지금의 전주)의 견훤, 철원의 궁예 등이 두드러진 반란 세력이었다.
[후백제와 후고구려 건국]
반란 세력 중 견훤과 궁예 세력이 독자적으로 국가를 만들며 신라와 대립하였다.
1. 후백제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를 지배하던 견훤은 892년 완산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스스로를 후백제왕이라 일컬었다.
2. 후고구려
평양에서부터 충청북도 일대를 지배하던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정했다가 911년 태봉으로 바꾸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세력권이 경상도 일대로 축소된 신라와 더불어 후삼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후삼국 통일]
후삼국의 통일은 왕건에 의해 이루어졌다.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은 918년 궁예의 신하들이 정변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면서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국호를 고려로 하고 자신을 태조로 칭했는데, 919년 송악(지금의 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935년 신라 경순왕이 자진하여 고려에 항복했고, 936년 고려가 후백제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낸 후 나누어졌던 세 나라는 다시 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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