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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말의 신흥 무인 세력 |
| 요약 |
고려말의 신흥 무인 세력
공민왕대 이후 고려는 홍건적이나 왜구의 침입으로 인하여 커다란 위기를 직면하였다. 따라서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들의 역할은 점차 증대하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미 병적이 소멸되어 없어진 상태이며, 외적을 막기 위해서는 이름있는 장수들이 각지에서 자신의 능력대로 군대를 召募하여 전장에 임하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되다시피 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의 유력자들은 대부분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에 대해 국가에서도 사실상 그 효용을 인정하고 있었다.
고려 전기의 무반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신흥 무인 세력의 등장은, 공민왕 3년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 첨설직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국가의 재정 형편이 크게 어려워진 상태에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야만 했던 국가에서는 모병 작업을 하면서, 지방의 사족들이나 향리들 가운데 무예가 뛰어난 자를 모아서 실직이 아닌 첨설직을 수여하였다. 그리하여 실제 관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중앙으로부터 관직을 수여받아 새롭게 신분을 상승시켜나가는 사회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각기 자신의 노비들이나 인근 지역의 농민들을 독자적인 부대로 조직하여 사적인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국가에서 모병 작업을 전개할 경우 자신의 군사력을 이끌고 집단적으로 이에 응하였고, 그 결과로 첨설직을 받게 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들이 국가의 공적 군사력으로 편입되었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첨설직을 부여할 수 있는 유력자들의 휘하로 편입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일 군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할 경우 스스로 섬기는 사람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흥 무인 세력들은 점점 가장 유력한 인사들의 휘하로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상당수가 개국 공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고, 정식 군대의 지휘관의 실직을 수여받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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