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몽고에 대한 저항의 원동력 |
| 요약 |
지금의 미국보다 더 강한 나라였던 몽고 제국, 탁월한 기마 전술을 바탕으로 유럽 사람들까지 벌벌 떨게 만들었던 몽고군을 고려는 어떻게 40년 동안 대적할 수 있었을까? 몽고 침략 때 항전을 주도한 최씨 무신정권의 힘이 썬 파워였기 때문일까? NO, 단적으로 말한다면 최씨 무신정권은 몽고와의 장기 항쟁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고려 최강의 군대였던 삼별초를 자신들의 정권 유지 도구로만 사용하였고 몽고와의 전쟁에는 거의 투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안전한 강화도로 피난했으면서도 육지에 남은 백성들을 위한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강화도가 안전한 장소였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시라. 몽고가 세력을 형성한 지역이 어디인가. 대초원지대 아닌가. 그들은 어릴 때부터 말을 타고 이곳 저곳 떠돌며 자란 민족이다. 유목 민족들은 부족 단위로 살았기에 뭉치기가 어려웠지만 한번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징키스칸의 몽고 제국이 바로 큰 힘이 발휘된 예이다. 그런데 막강한 힘을 지닌 이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물에 약하다는 점이다. 초원지대에서만 살다보니 해전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고려 조정은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고려가 40년을 버틴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민중의 힘이었다. 정부의 방치에도 불구하고 일반 농민과 천민들은 오랜 기간 몽고군을 괴롭혔다. 일반 백성들은 육지에서 몽고군의 약탈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몽고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윤후가 지휘하여 싸운 충주성 전투이다.
몽고군 제 2차 침입 때 처인성(용인) 전투를 지휘하여 적장 살리타를 죽인 바 있던 승려 무장 김윤후는 몽고군이 충주성을 공격할 때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그들의 신분 해방을 약속하며 전투에 결사적으로 참여하게 하여 결국 성을 사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화도에 피신한 최씨 무신정권은 백성들을 계속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