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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불교의 전개 |
| 요약 |
< <고려가 불교 국가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태조인 왕건은 통일의 과업이 부처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며 전국에 사원을 세우고 고승을 모셔 스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국가적인 이념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불교가 지도적인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려 불교가 국가적인 번영을 이루었던 이면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신라 불교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신라 불교는 원래 종파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파쟁도 심하지 않았다. 여러 경전을 두루 공부하여 통합적인 불교를 이룩하고자 하는 기풍이 오히려 지배적이었다. 또 원효에 의해 왕실 불교 귀족 불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종 불교를 이룩하자는 운동이 나타나면서 더욱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고 백 년이 지나자 온갖 재화를 그러모아 부귀를 누리는 귀족과 그 때문에 더욱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백성들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또 불교계도 귀족 불교를 추구하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여 지방 호족이나 반란 세력들과 손잡고 민중의 불만을 수럼하여 혁신을 표방하는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의 구체적인 모습이 오교구산으로 대표되는 여러 종파의 난립이었다. 중앙의 귀족 불교는 교종으로 굳어지고 지방 호족들의 세력과 깊이 연계된 선종의 고승들은 이에 반기를 들고 각기 새로운 교단을 열었다. 이때 불교는 여러 종파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종파 안에서도 통일을 기할 수 없을 ㅈ도로 심각하게 분열되었다.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고려 왕조는 수립되었고 태조 왕건도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 후 고려에서는 불교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계속 진행되었다. 광종이 이 일을 앞장서서 수행하였고 의천 역시 그 일의 선두에 섰다. 그러나 통합은 선종은 선종대로 결속하고 교종은 교종대로 결속하는 데 그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선종과 교종의 대립을 넘어서는 차원 높은 통일적인 불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의천의 생각이었고 그의 사상의 핵심이었다. 그는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는 새로운 종파를 열었다. 바로 천태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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