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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목호의난 |
| 요약 |
<< 목호의난(牧胡-亂) 고려 말기 탐라(耽羅:제주도)의 목호(牧胡:몽골의 牧子)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탐라에서 삼별초를 평정한 뒤, 1273년(원종 14) 원(元)나라는 일본원정에 대비하여 이곳에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와 목마장(牧馬場)을 두고, 소·말·낙타·나귀·양을 방목하면서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1294년(충렬왕 20) 탐라가 고려에 반환되자, 조정에서는 목사(牧使)·판관(判官)을 두어 다스렸다. 목마장은 가끔원나라가 직접 관할하기도 하였다. 1372년(공민왕 21) 명(明)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자, 명에 말[馬]을 보내기 위하여 제주의 말을 징발하였다. 필사초고(必思肖古)·석질리(石迭里)·독불화(禿不花)·관음보(觀音保) 등의 목호들은 “세조황제가 방축(放畜)한 말을 원나라의 적인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고 난을 일으켜, 유경원(劉景元)·이용장(李用藏)을 살해하였다. 조정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말을 바칠 것을 청하는 것으로 그쳤다. 74년 다시 명나라에서 말 2,000필을 요구해, 역시 제주에서 징발하자 다시 목호들이 난을 일으켰다. 이에 조정에서는 최영(崔瑩)을 양광·전라·경상도 도통사(都統使), 염흥방(廉興邦)을 도병마사(都兵馬使), 이희필(李希泌)을 양광도상원수(楊廣道上元帥), 임견미(林堅味)를 부원수(副元帥), 지윤(池奫)을 경상도상원수, 김유(金庾)를 삼도조전원수 겸 서해교주도도순문사(三道助戰元帥兼西海交州道都巡問使)에 임명하여, 각기 2개 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압하도록 하였다. 전함 314척, 군사 2만 5605명으로 적괴(賊魁) 3명을 죽이고 난을 평정하였다. 큰 토벌규모는 당시 목호를 중심으로 한 제주의 세력이 강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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