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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신라의 골품제 |
| 요약 |
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비하여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한 시기가 늦은 편이었다. 신라는 여러 부족의 대표가 함께 모여 정치를 운영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던 신라 초기의 전통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초기의 전통을 유지한 대표적인 제도가 화백 회의였다. 귀족은 이를 통하여 국왕을 폐위시킨 적도 있었고, 새 국왕을 추대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왕권을 견제하기도 하였다.
신라에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 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신라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관등 승진의 상한선이 골품에 따라 정해져 있었으므로 일찍부터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골품 제도는 가옥의 규모와 장식물은 물론, 복색이나 수레 등 신라인의 일상 생활까지 규제하는 기준으로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화랑도는 원시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기원하였다. 이 조직은 귀족 자제 중에서 선발된 화랑을 지도자로 삼고, 귀족은 물론 평민까지 망라한 많은 낭도가 그를 따랐다. 여러 계층이 같은 조직 속에서 일체감을 가지고 활동함으로써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절, 완화하는 구실도 하였다.
신라 청소년은 화랑도 활동을 통하여 전통적 사회 규범을 배웠다.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제천 의식을 행하고, 사냥과 전쟁에 관하여 교육을 받음으로써 협동과 단결 정신을 기르고 심신을 연마하였다.
화랑도는 진흥왕 때 국가 차원에서 그 활동을 장려하여 조직이 확대되었으며, 원광은 청소년에게 세속 5 계를 가르쳐 마음가짐과 행동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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