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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신라의 음악 |
| 요약 |
신라의 음악 우륵에 의하여 전해진 가야의 음악과 노래·춤 등이 신라 궁중의 음악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당시 신라의 음악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소박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전해진 삼국의 음악을 보아도 신라악은 단지 금(가야금), 노래, 춤으로 구성된 단순한 편성의 음악이었으며, 이들 음악을 풍속악 또는 풍속무라 한 것으로 보아 지역적 특색이 두드러지는 향토음악이었을 것이다. 이는 신라의 지리적 위치가 중국 등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불편하였기 때문인데, 이 점에서 삼국통일 이전의 신라음악이 고유의 향토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향토음악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등에 풍부하게 보인다. 유리왕(24-57년)때 음악인 회악(會樂, 會蘇曲), 탈해왕(57-80년)때 음악인 돌아악(突阿樂), 자비왕(458-478년)때 백결선생이 지은 대악(?樂)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밖에도 신라 여러 지역 음악의 제목이 전해지나, 음악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신라에서는 삼국통일 이전에 이미 국가기관으로 음성서(音聲署)라는 기관을 예부(禮部)에 설치하고, 관리들을 두어 음악과 관련된 일을 보게 하였다. 음성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기관인데, 통일 이후 경덕왕 때는 대악감(大樂監)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으나, 혜공왕 때 다시 음성서로 고쳤다. 음성서는 궁중의 의식이나 연회와 관련된 음악행정을 맡아보았다. 화랑도의 수련과정 등을 통하여 추측하건대, 신라에서는 청소년의 정서수련에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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