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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명나라 |
| 요약 |
명나라
원나라 말기 수십 년 동안은 수재나 한재와 같은 각종 자연 재해에 대해 정부는 사실상 대처할 능력을 상실했으며, 이와 동시에 각종 공공 사업에 대규모 노동력이 징발되어 백성들은 가혹하게 착취당했다. 민생고에는 아랑곳없이 조정에서는 권력 투쟁이 그칠 줄 몰랐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정권 탈취를 노리던 초야의 영웅들에게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1. 주원장은 바닥 출신 어린 시절 가뭄과 기근으로 부모 형제가 굶어죽는 모습을 목격했던 주원장(朱元璋)은 성장과정에서 워낙 세파에 시달렸기 때문에 사람 다루는데 있어서 일찍부터 수완을 보였으며 각종 사태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시켰다. 불과 10여 세의 나이에 홀로 절에 들어가 소사미(小沙彌)가 되어 잔심부름으로 목숨을 부지하다가 얼마 뒤 행각승이 되어 회하(淮河) 유역을 떠돌며 걸식을 했다. 이런 밑바닥 생활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그는 명나라 건국에 매개체가 되었던 농민 반란이나 비밀 결사를 능숙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마침내 1368년 주원장은 여러 지역의 실권자들을 하나 하나 제압하고 명 왕조의 탄생을 정식으로 선포하게 된다. 역사상 가장 미천한 출신의 황제가 새로운 왕조를 건립하는 순간이었다.
2. 막가파는 겁이 없어 극히 미천한 신분에서 지존의 자리에 올랐던 주원장은 박력 있게 일을 추진시켰다. 그에게는 전통의 속박이 별로 문제가 안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포부를 실천에 옮겼다. 벼락 부자가 무조건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을 찾듯 주원장도 수도 남경의 성벽을 웅장하게 개축하기 시작했다.
그 길이가 무려 48km나 되었으므로 남경은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벽 도시로 남아있다.
남경의 성벽과 함께 주원장이 취했던 정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극단적인 중앙 집권제였다. 우리 나라로 말하자면 안산 시장은 물론이고 안산시 경찰국장의 임면권 및 급료까지도 중앙 정부에서 일일이 관여했던 것이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거대한 국가에서 이처럼 엄격한 통제가 시행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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