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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의화단 사건 |
| 요약 |
의화단 사건
정국이 뒤숭숭하자 민간에서는 의화단(義和團)이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글자의 의미상으로는 정의롭게 평화를 수호하는 단체란 뜻이지만 사실은 화북 지방에서 활동했던 조직으로 회원들은 권법을 연마하고 동시에 신비한 집회 의식을 거행했다. 19세기 말 산동(山東) 주민과 외국인 사이에 충돌이 일자 이를 계기로 사건을 확대시켜 외국인들을 보는대로 공격하고 서양 기물을 마구 파괴했다. 당시의 실권자 서태후(西太后)는 의화단에 대한 태도가 애매했다. 난민(亂民)이라 매도하다가도 의민(義民)으로 추겨세우기도 했다. 외세의 압박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서태후의 심중을 어지럽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했던 의화단에 대해 열강들은 중국 정부를 향해 토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런 요구가 심하면 심할수록 서태후는 열강에 대항하려는 욕구가 더욱 강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1. 팔국 연합군 - 신축 조약 마침내 1900년 6월 21일 서태후는 선전 포고를 했다. 그런데 그 대상은 어느 특정한 나라도 아니고 「먼 나라 그들」이란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다. 결국 중국과 접촉했던 모든 외국을 적대국으로 간주하고 선전 포고를 한 셈이다. 서태후가 선전 포고를 내린 날은 의화단원들이 북경에서 외국 공사관을 공격하고 교회를 불태운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에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8개 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의화단 사건을 방임한 책임을 물어 북경으로 처들어왔다. 서태후와 광서제(光緖帝)는 그해 8월 15일 서둘러 서안으로 피신했다. 북경에 남아있던 이홍장(李鴻章)은 연합군과 신축(辛丑) 조약[북경 의정서(北京議定書)]를 체결했다. 연합군은 의화단을 부추긴 혐의로 청나라 정부측 고관 11명에 대해 처형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배상금으로 은화 4억 5천만 냥을 지불해야 했다. 이 액수는 당시 중국의 5년 간 전체 재정 수입의 총액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조약이 체결되고 난 뒤에도 러시아의 군대는 만주의 일부를 계속 점령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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