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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프랑크의 전성기 |
| 요약 |
카롤루스 대제
‘마호메트 없이는 카롤루스 대제도 없다’ 라고 피렌이 주장했듯이, 지중해 연안을 주름잡고 있었던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여 카롤루스 대제는 유럽 문명권을 확립하고 일체화시킨 군주였다. 768년 부친인 피핀의 사후, 동생 카알만과 왕국을 공동 통치하다가 771년 카알만이 죽자 전 프랑크 왕국을 통일 지배하였다. 재위 40여년간 사방을 경략하여 대통일 사업을 성취하여 772~804년에는 작센을 병합하고, 774년에는 교황의 청으로 북 이탈리아 랑고바르트 왕국을 멸망시켜 이를 합병하였으며 778년 서쪽의 사라센 족을 토벌하여 에스파냐 변경 영토를 설치하였다. 또한 778년 바이에른, 케른텐을 합병하고 791~803년에는 멀리 동방의 아바르, 벤드 등의 제 민족을 정복하여 거의 대부분의 게르만 부족을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종교, 즉 프랑크 왕국과 크리스트교로 통합하였다. 각 부족이 저마다의 법전을 가지고 통치하던 이들 광대한 지역을 중앙 집권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그라프, 순찰사 등의 관료 제도를 정비하면서도, 한편 봉건 제도 발전의 바탕을 만들어 중앙의 각 봉건 국가가 성립될 수 있는 공통적인 출발점을 만들어 놓았다. 이 밖에 이탈리아의 영토의 일부를 교황에 헌납하는 등 교회에 대한 봉사가 컸으므로 교황 레오 3세는 800년 카롤루스 대제를 로마 황제로 대관하여 게르만 인들에게 크리스트교를 확대하는 사명을 위탁하였다. 그것은 형식으로는 서 로마 제국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피핀, 클로비스이래의 과 제였던 비잔틴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이 실현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에서 로마 황제권과 크리스트 교 교황, 즉 속권(정치적 권력)과 교권(영적 권력)이라는 두 권력이 대두하여 서유럽 세계가 어우러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은 분열되었으나 로마 제국의 부흥의 이념은 10세기에 신성 로마제국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수도 아리헨에 궁정 학교를 설립, 알퀴누스 등 학자를 초빙하여 교 육 사업을 장려하였으므로 소위 카롤링거 르네상스 문화가 번영하였다. 이 점에서 유럽을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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