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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장미 전쟁 |
| 요약 |
장미 전쟁(1455~85)
백년 전쟁 직후 영국에서 일어난 내란으로 왕위 계승을 둘러싼 랭카스터 가(붉은 장미 문장)의 헨리 6세와 요크 가(흰 장미 문장)의 리차드 간의 분쟁이었다. 튜더(Tudor) 가문은 북웨일스에서 일어난 지방 지주의 가문이다. 헨리 5세의 왕비 캐서린을 섬겼던 오언 튜더가 헨리 5세가 죽은 뒤 캐서린과 결혼함으로써 랭커스터 가문과 연결됐다. 오언은 본래 왕비를 호위하던 기사였다. 헨리 7세(재위 1485~1509 년)는 이 오언과 캐서린의 손자로 태어났다. 헨리 7세는 리처드 3세 군을 무찌르고 영국 국왕이 됐으며, 그의 즉위를 도왔던 요크 파의 협력자들과의 약속을 따라 1486년에 에드워드 4세의 큰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했다. 이로써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결합이 이루어져 30년 동안 계속됐던 장미 전쟁도 끝났다. 헨리 7세는 평화를 수립하고 쓸데없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국내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장미 전쟁은 겉으로는 왕위 계승 전쟁이었지만 실은 봉건 제후의 집안 싸움으로 민중은 거의 내란에 참가하지 않았다. 병력도 별로 많지 않아 양군을 합해 5천 명쯤의 병력이 동원된 전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만큼 내란으로 인한 피해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또한 내란에 참가했던 사병과 대영지를 가진 봉건제후가 대부분 손해를 입고 몰락한 결과, 자연히 왕권은 강해져서 영국의 산업과 경제도 지장 받지 않고 계속 발전했다.
왕은 산업과 상업을 통해 중산 계급으로 성장한 지방의 지주 및 시민을 치안 판사로 임명했다.
또한 왕은 이들 평민층과 결탁해 귀족 세력을 억눌렀으며, 왕권의 지배는 구석구석까지 미치게 됐다. 웨일스와 영국의 결합도 튜더 왕조의 지배 하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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