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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세도정치란 |
| 요약 |
세도정치란? 정조가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그의 어린 아들 순조가 즉위하자, 순조의 장인 김조순이 정권을 장악하여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이후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 세력의 세도 정치가 6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일시적으로 암흑기를 가졌던 당쟁과 일당독재체제는 정조의 뒤를 이어 어린 임금들이 연달아 등극함에 따라 강력한 왕권이 사라지면서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의 형태로 변질되었다. 이는 선조 이후 오랫동안 조선의 정치권력의 기본 구조였던 붕당정치가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정조의 어진순조 때에 정권을 잡았던 안동 김씨 세력은 헌종이 즉위하면서 풍양 조씨에게 잠시 권력을 내주었으나 철종이 즉위하면서 다시 정권을 잡아 세도를 떨쳤다. 60년간 이어진 세도정치의 영향으로 왕권은 한없이 나약해져갔고 백성들은 물론 왕족들마저도 안동 김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형적인 정치 형태인 세도정치는 온갖 부정부패를 야기했는데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 등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외척들의 세도정치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자 이에 대항하는 민란이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순조 때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이다.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도하에 수많은 몰락한 농민들과 영세농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한때 청천강에서 의주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장악했으나 4개월 만에 관군에 의해 평정되었다. 홍경래의 난 이후에도 민란은 계속 이어져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도 정권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져 갔고 재난과 질병이 거듭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백성들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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