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 요약 |
낙랑국에서 낙랑공주와 결혼한 호동왕자는 고구려로 혼자 돌아온 후 공주에게 적군이 오게 되면 저절로 소리를 내는 낙랑국의 북과 나팔을 깨뜨려 버리라는 편지를 쓰게 된다. 삼국사기에는 ‘네가 너희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과 나팔을 깨뜨릴 수 있다면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을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를 맞지 않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동왕자의 제안에 따라 북과 나팔을 깨뜨려 버린 낙랑공주는 아버지 낙랑국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낙랑공주를 이용하여 낙랑국 습격에 성공하여 큰 공을 세운 호동왕자는 태자로 봉해져 고구려의 왕 자리를 기대하였을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지고 있었다.
부여는 고구려 대무신왕 5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대소왕이 살해되어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때 부여 대소왕의 막내 아우가 고구려 이웃지역에 갈사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신생 국가인 갈사국은 왕의 손녀를 고구려 대무신왕의 두번째 부인으로 보내야만 나라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허약한 국가였다.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인 갈사국 손녀의 아들이었는데 호동왕자가 낙랑국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자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가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되지 못할까 염려되어 호동왕자를 음해하게 된다.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는 호동왕자가 이복 어미니인 자신을 무례하게 대접하여 간통하려는 위험이 있다는 말로 대무신왕을 충동하여 결국 대무신왕은 아들 호동왕자를 의심하게 되어 호동왕자에게 이러한 사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게 된다.
아버지의 첫번째 왕비인 이복 어머니를 희롱했다는 협의를 받게 된 호동왕자는 적극적으로 사실을 규명하는 대신 ‘내가 만일 해명한다면 이것은 어머니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며 왕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어찌 효성이라 할 수 있겠가는?’하고는 칼을 물고 엎어져 죽음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호동왕자가 이복어머니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여 살해되었는지, 아니면 자신을 사랑하는 낙랑공주를 이용하여 낙랑국을 습격하여 공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이복어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