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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의 왕자도 성균관에 입학했다 |
| 요약 |
조선의 왕자도 성균관에 입학했다? 과연 조선시대 세자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우선 세자는 6살이 되면 성균관 대제학 등 유명 선생님에게 강의를 듣기 시작했고, 책을 한 권 떼면 왕과 왕비 앞에서 배강(背講)을 했다. 배강은 일종의 발표회다. 재미있는 건 학습에 들어가기 전 꼭 조청(물엿) 두 숟갈을 먹였다는 사실이다. 흡수가 빠른 당분을 섭취시켜 수업에 들어가기 전 머리를 맑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학습이 끝나는 밤이 되면 옻칠을 한 목욕통에 따뜻한 소금물을 받아 목욕을 시켰다. 후계자 교육은 왕세자에 책봉되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인교사만 20명, 그리고 13명의 책을 맡아 관리하던 사서를 두고 교육을 받았다. 성균관에도 입학해야 했다. 성균관 안에서는 아무리 세자라고 해도 스승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야 했고 격이 낮은 계단과 통로를 이용해야 했다. 수업을 받을 때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백성들처럼 책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바닥에 책을 놓고 수업을 들어야 했다. 왕세자의 하루는 고달팠다. 아침에 일어나 반드시 윗사람들에게 문안인사를 해야 했고 문안에서 돌아오면 아침 강의에 들어갔다. 강의는 저녁에도 있었다.
이 외에도 수시로 선생을 불러서 강의를 듣는 소대(召對)와 늦은 밤에 하는 보충수업인 야대(夜對)가 있었다.
간혹 이 같은 교육을 못 견디는 세자들도 있었다. 그럴 경우 왕에게 호되게 혼이 났고 세자자리를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세자는 선왕이 갑자기 죽어서 운 좋게 국왕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성군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유교를 바탕에 둔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던 조선은 이처럼 군주가 될 왕세자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이 500년이라는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교육 시스템이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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