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고려는 대장경을 왜 만들었을까 |
| 요약 |
고려는 대장경을 왜 만들었을까?
대장경이란 경(經), 율(律), 논(論) 등 삼장(三藏 : 범어로는 ‘Tri pitaka' 즉 ’세 개의 광주리‘라는 뜻)의 불교 경전을 총칭하는 말로, 이를 목판으로 판각한 것은 송대의 개보판 대장경이 효시이다. 이 대장경은 고려에 성종 10년(991)에 전래되어 우리 나라에 많은 자극을 주더니,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당한 고려 조정은 불력(佛力)을 빌어 적군을 물리치고자 대장경판의 제작을 발원하게 되었다. 현종 때에 시작된 대장경 제작은 그 후 덕종, 정종을 거쳐 문종조에 이르러서야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대장경의 제작은 마침내 선종 4년(1087)에 일단락을 보게 되었다. 이른바, 초조 대장경이라 불리며, 그 수가 6천여 권에 달하였는데, 그 후 대구 부인사에 옮겨 보관하였다가 몽고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현재 그 인본(印本)의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초조 대장경이 완간된 지 얼마 후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심이 되어 속장경을 제작하여 또 하나의 큰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속장경은 경, 율, 논 삼장이 아니라, 그 주석서인 장(章), 소(疏)를 모아 간행한 것이다. 의천은 이 일에 일찍부터 뜻을 두어, 국내는 물론 송, 요, 일본에까지 널리 불서를 모았고, 그것들을 간행하기에 앞서 그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다. 또, 그는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4700 여권의 불서 목록에 따라 간행하여 숙종 6년에 속장경을 완성하였다. 이 속장경 역시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흥왕사에서 소실되었다. 지금은 속장경의 인본이 역시 일부 전해지고 있다. 몽고의 침입을 당한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다시 대장경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해인사에 남아 전해오는 8만 대장경이다. 이 8만 대장경의 판각 사업은 고종 23년(1236)에 착수하여 16년이 걸려 고종 38년(1251)에 완성되었다. 경판 수 81,000여 매에 달하는 이 대장경판은, 글자체의 아름다움과 목판 제작의 정교함과 내용의 정확성에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