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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최무선은 화약 제조법을 왜 배우려 했을까 |
| 요약 |
최무선은 화약 제조법을 왜 배우려 했을까?
우리 나라에서 화약의 제조법이 개발되어 화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말의 일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늦어도 14세기 전반, 즉 공민왕 초년까지는 이미 화약과 화포가 전래되어 있었다. 하지만, 원이나 명이 화약의 제조법만은 비밀에 붙여서 고려는 그것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반면에 왜구의 창궐 등으로 인해 그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였다. 왜구들은 흔히 조창, 성읍을 습격하여 양곡을 약탈하고, 관아와 민호를 불사르는가 하면 백성을 살상하거나 포로로 잡아갔다. 이로 인해 민심이 불안해지고 농토가 황폐해졌을 뿐만 아니라, 조세운송 마저 두절되어 국가 재정까지 위협받을 정도였다. 우왕 초기에 강화도가 침략 당했을 때에는 천도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고려는 왜구를 막기 위해 외교적 교섭을 벌였으나, 일본 정부가 왜구를 억제할 힘이 없었으므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고려는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적극적인 토벌에 힘썼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오랜 동안 화약의 제조에 진력한 사람이 최무선으로서, 그는 마침내 중국상인인 이원으로부터 염초자취술(焰硝煮取術)을 배워서 성공하였다.
그는 이를 조정에 알리고, 우왕 3년(1377)에는 그 제조소인 화통도감을 발족시켰다. 이후, 화약과 화기의 제작은 급속도로 진전되어, 우왕 6년의 진포(금강 입구)싸움과 9년의 진도 싸움에서 왜구를 무찌르는 데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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