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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임진왜란의 원인 경과 결과 |
| 요약 |
임진왜란의 원인 경과 결과
1. 임진왜란 전의 사항 이 무렵 일본에서는 100여 년간에 걸친 전국시대의 혼란을 도요토미가 평정하여 통일하였다. 이에 도요토미는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자신에 대한 불평 세력의 관심을 나라 밖으로 돌리게 하고 아울러 자신의 정복욕을 만족시키려 조선과 명에 대해 대대적인 침략 준비를 하였다. 도요토미는 우선 조선에 정탐사를 보내어 조선의 조정을 몰래 살피게 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칠 것을 조선에 요구하기도 하였다. 조선 측은 도요토미의 요구가 너무도 무례한데 분개하여 거절하였다. 더구나 변장한 왜인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길과 강, 산, 동네의 숫자까지 적어 가지고 가다가 발각되어 맞아 죽는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나 민심은 더욱 어지러웠다. 조선은 당쟁의 와중에서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무시되고, 1590년에 파견되어 1년 동안 일본의 정세를 보고 돌아온 통신사의 보고 내용이 상반되어 西人 정사 황윤길의 주장마저 무시되어, 집권당인 東人 부사 김성일의 낙관적인 보고 내용을 보고 전쟁에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는 당리당략이 나라의 운명을 망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만, 28세에 낙마하여 과거에 낙방하고 32세의 나이인 1576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여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청렴결백한 관직생활로 일관함으로써 한직만을 전전하던 중 유성룡의 천거로 임란 1년 전에 47세의 나이에 전라좌수사(여수)가 되었던 이순신만이 전쟁에 대비한다.
2. 임진왜란의 전개 1592년 음력 4월 13일 20만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에서 조금 떨어진 대마도에서는 왜군들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많은 배에 군사들을 태우고 서서히 출발하고 있었다. 오후 5시경 부산 앞 바다를 뒤엎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서울을 지나 함경도까지 침략하였다. 조선의 공세는 전쟁이 일어난 지 20여 일이 지난 5월초 바다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싸움은 한산도 대첩에 이르러 절정기에 달했다. 도요토미가 이순신 장군과는 맞서 싸우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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