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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 후기 민란의 발생 원인은 무엇일까 |
| 요약 |
조선 후기 민란의 발생 원인은 무엇일까?
[ 자 료 ] 1. 1803년 강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나은지 사흘만에 군보(軍保)에 편입되고 이정이 못받친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 물건 때문에 곤액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 아내가 양경을 가지고 관문에 나아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졌다. - 목민심서, 정약용- 2. 군정에 관한 당초의 규정을 사람이 빠질 때마다 보충하는 것이었는데... 빠진 사람은 많고 호구는 늘어나지 않았다. 각면의 이름만 남아 있는 장정이 천여 명이 넘어도 보충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따라 면계전 명목으로 각 면의 면임들에게 내게 하였는데 부족분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한번 면임을 맡으면 망하게 되었다. - 고산현 읍지 - 3. 금강산으로 옮겨 온 산천의 기운이 태백산, 소백산에 이르러 계룡산으로 들어가니, 정사의 팔백 년 도읍할 땅이로다. 그 후 원맥(백두 산맥)이 가야산으로 들어가니, 조씨의 천년 도읍할 땅이로다. 전주는 범씨의 육백년 도읍할 땅이요... - 정감록 -
[ 분 석 ] 1. 군포의 부당한 징수에 저항하는 한 장정의 이야기이다. 세도 정치 아래 삼정의 문란이 극심하여 민중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향촌을 떠나 유리 걸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2. 조세를 공동납의 형태로 촌락에 부과함으로써 일반 평민은 물론 부유한 평민도 모두 수탈의 대상이 되었는데, 부유한 백성도 부족분을 감당하지 못해 몰락할 만큼 가혹하였다. 3. 사회의 불안이 증가하면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는데. 예언 사상은 대개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하였다. 이러한 현실 부정적 성격은 당시 농민들에게 혁명적 기운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지배 체제에 항거하는 농민 봉기를 초래하였다. 18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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