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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의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 요약 |
조선의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시대에도 과연 여자의 직업이 있었을까? 철저한 유교중심의 사회에서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는 궁녀, 의녀, 기녀, 무녀가 있었다. 궁녀는 궁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여성들과 무수리, 각심이, 방자 등 품계 없이 일하는 여인들 모두를 말하는데, 종 9품에서 정5품까지의 품계를 가질 수 있어 당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보통 궁녀는 상궁이나 나인이라고 불리며 왕실의 의식주와 관계된 일을 맡았다. 가장 지위가 높은 궁녀는 '지밀'로 왕실과 왕비의 신변 보호 및 일체의 시중과 내전의 물품관리, 궁중 안 여러 기관과의 교섭을 담당했다. 이 외에 궁녀들은 왕궁에서 소요되는 의복을 만들고 수를 놓은 '침방'과 '수방' 식사를 담당하는 '소주방' 음료 및 과자를 만드는 '생과방' 빨래와 옷의 뒷손질을 하는 '세답방'등에서 일했다. 보통 궁녀는 10년만에 한 번씩 뽑았는데 양반도 평민도 아닌 중인 계급의 여자아이 중에 4~10세 사이의 아이로, 상궁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이렇듯 궁녀는 아무나 될 수 없었기에 집안의 영광으로 삼았지만 철부지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며칠씩 앓아 눕고 평생 맘 고생을 했다. 어린아이를 뽑은 것은 일찍 데려가 궁녀로서의 교양을 쌓게 하려 함이었다. 처음 입궐한 견습나인을 '애기 항아님'이라고 불렀으며 정식 나인이 되려면 15년이나 걸렸다. 견습나인은 몸가짐이나 말하기 등 궁중 법도를 빠짐없이 배우고 언문과 천자문, 대학, 소학까지 두루 익혀야 했다. 입궁한 지 15년이 지났을 때는 일종의 성년식을 치르는데 사실상 신랑 없는 혼례의 의미를 겸해 이날 집에서 바지, 버선, 속치마 등과 음식을 장만하여 부모로서의 마지막 도리를 다했다. 한편 처녀만 궁녀가 될 수 있다는 법도 때문에 '금사미단(金絲未斷)의 판정을 받아야 비로소 입궁이 허락됐는데, 앵무새의 피를 팔목에 떨어뜨려 피가 맺히지 않고 그냥 흐르면 처녀가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일단 궁에 들어오면 늙고 병들기 전까지는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예외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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