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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미륵사지출토 토기 |
| 요약 |
미륵사지출토 토기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으며, 삼국시대의 사찰가운데 백제의 절로는 최대의 규모이다. 『삼국유사』에 백제의 무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에 행차하였을 때 용화산 아래 큰 못 가에 이르자 미륵삼존이 나타났으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고, 왕비가 왕에게 이 곳에 절을 세우기를 청하므로 못을 메워 절을 창건하였다는 기사가 전한다.미륵사는 북쪽으로 약 430m 높이의 용화산(미륵산)을 배산으로 남향한 사지로서 그 주위에 익산토성, 오금사지, 동ㆍ서 고도리석상, 왕궁리 5층석탑, 제석사지 등이 분포하고 있다. 미륵사지에는 발굴 전에는 국보 11호인 석탑과 보물 236호인 당간지주가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정부의 중서부 고도 문화권 정비 및 정화 계획의 일환으로 미륵사지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80년 7월부터 1988년까지 사역의 중심지역을 비롯한 주변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완료하였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미륵사의 가람배치는 백제뿐만이 아닌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3원식가람(三院式伽藍)이라는 특수한 양식임이 확인되었으며, 3금당 북쪽에 마련된 거대한 규모의 강당, 사역을 구획하는 남문 담장과 고려시대 말경에 만들어진 와요지(기와가마터 ) 등이 확인되는 등 고대 가람 연구에 새로운 자료들이 제공되었고, 또 17,000여 점에 달하는 유물 역시 백제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미륵사지 유물은 백제말경의 초창기 건물터, 통일신라시대 건물터, 고려시대 건물터, 조선시대 건물터 등 건물지에서 주로 출토되었으며 사역 남측에서 조사된 연못지의 북편 호안에서는 백제 시대에 빠져 죽었으리라 믿어지는 남녀인골과 많은 유물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대개 건물지 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출토유물의 분석에 따라 건물지의 성격 및 기능 파악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같은 현상은 목조건축이 주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후대에 축조된 건물지의 경우에는 그 건물의 기초 바닥에서 전대의 수막새, 암막새, 토기, 자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17,000여점에 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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