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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의 능침제도 |
| 요약 |
고려의 능침제도 고려의 왕릉은 개성 부근 산악지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많은 왕릉들이 몽고의 침입과 도굴 및 조선시대의 개축 등을 거치면서 원형이 많이 변하였으나,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공민왕의 능인 현릉(玄陵)과 그의 부인 노국공주의 능인 정릉(正陵)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잘 보존되었다. 고려의 왕릉들은 풍수를 살펴 산 중봉에 자리 잡아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능 뒤에서부터 좌우로 뻗어 내리고, 명당수가 능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지세를 골라잡았는데, 이러한 택지 원칙은 조선시대의 왕릉에도 기본적으로 계승되었다. 태조의 현릉(顯陵)은 송악산 기슭에 장사 지냈다가 몇 차례 천장을 거쳐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능역은 송악산 서쪽 기슭에 좌청룡, 우백호의 야산을 낀 지세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 주위에는 신라의 왕릉처럼 면석(面石)에 십이지신상을 얇게 돋을새김한 호석이 아랫부분에 둘러져 있고, 그 밖으로 석난간이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석상(石床),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그 좌우에 망주석 1쌍, 석인(石人) 1쌍이 각각 마주보고 세워져 있고, 네 모퉁이에 2쌍의 석사자가 능을 수호하고 있는 배치를 하였다. 능역 중앙에는 정자각이 있고, 정자각 입구에는 원래 홍살문이 있었다고 한다. 또, 능비(陵碑)가 능 우측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나 지금은 없다. 현릉에는 망주석과 장명등이 있으나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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