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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신라왕의 유물 |
| 요약 |
신라왕의 유물
능묘와 고분 경주 시가지에는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둥글둥글한 작은 산 같은 등성이가 많은데, 모두 신라 때, 왕이나 왕비, 왕족, 귀족들의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명칭에 있어서 왕(王)과 왕비(王妃)의 무덤은 '릉(陵)‘ 이라 하고, 그 외의 무덤은 '묘(墓)'라고 부른다. 신라는 56왕 992년간이나 서라벌 경주에서만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당연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능묘가 존재해야겠지만, 지금 무덤의 주인인 피장자(被葬者)를 확실히 아는 것은 손가락으로 겨우 꼽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나 발굴된 무덤의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볼 때, 왕릉이나 왕비릉이라고 짐작되는 것도 여럿 있으나 이걸 능이라고 부르기엔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런 무덤을 '총(塚)'이라 부르고 있다. 능이나 묘라 단정할 수도 없고, 발굴이 되지않아 유물도 없는 경우 '고분(古墳)'이라 부른다.
신라에 관한 아랍문헌의 기술
신라의 위치와 관련해 첫 기록을 남긴 술라이만은 여행기 『중국과 인도 소식』(851년)에서 중국의 "바다 다음에는 신라의 도서가 있다"고 하고, 중세 아랍 역사학의 태두인 마스오디는 신라의 위치를 "중국의 동쪽 바닷가"나 "육지의 동단"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육지의 동단을 오로지 중국으로만 보아 온 종래의 지리관념을 타파하고 동방에 관한 새로운 지리지식을 첨가한 것으로 지리학 발전에 자못 의미가 크다. 10세기 이후 이슬람제국의 전성기를 맞아 무슬림들의 동방 진출이 한층 활발해지고 독창적인 이슬람 지리학이 개발, 정립됨에 따라 신라에 관한 지식은 보다 세밀화 되었다. 중세 지리학의 거장인 이드리시(al-Idrisi, 1099~ 1166년)는 『천애 횡단 갈망자의 산책』(1154년)에서 신라를 중국 동남해안에 있는 여러 개의 섬나라로 명기했다. 이것은 유럽의 세계지도에 처음으로 한국 이름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벨호(B. Velho) 세계지도(1562년)보다 무려 408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한국 이름이 기입된 현존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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