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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꿈의 도시 화성 |
| 요약 |
꿈의 도시 화성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795년 윤 2월 9일 아침, 바로 이 문을 열고 정조가 8일간의 행차를 시작합니다.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나란히 등록된 창덕궁과 화성. 단지 우연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정조의 행렬의 목적지가 바로 지금의 수원인 화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백성들이 왕실 행차를 보는 일은 매우 귀한 장면이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6천여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떠난 행차는 조선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었다고 합니다. 과연 정조의 행렬은 왜 화성으로 향한 것일까요? 그리고 정조에게 화성은 어떤 도시였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정조가 살았던 시간 속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창덕궁에서 화성까지는 약 40Km. 어머니 회갑잔치를 목적으로 떠난 행차에는 정조의 효심과 한이 깃들어 있다. 행렬이 화성에 도착한 다음 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을 찾아간다. 28세에 뒤주 속에서 죽음을 당한 비운의 사도세자. 그의 아들인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달래려고 당시 경기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화성을 짓기 5년 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나흘째인 다음 날, 화성행궁의 봉수당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열렸다. 어머니와 동갑인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함께 회갑을 맞았을 이 날, 아들 정조의 마음은 한과 슬픔으로 사무쳤을 것이다. 애틋한 그 마음 때문이었을까. 다섯째 날, 화성의 노인 384명을 초대하여 잔치를 연다. 이날 노인들은 신분의 차별을 떠나 마음껏 즐겼고 정조는 화성주민들에게 쌀을 내려 그 기쁨을 나누었다. 그 밖에도 정조는 화성 향교 대성전을 참배하고 문무과 별시를 치르고 합격자를 발표했으며 서장대에서 야간 군사훈련을 보고 신하들과 득중정에서 활쏘기를 했다. 그리고 시흥행궁에서 하룻밤을 묵고 여덟째 날 한강의 배다리를 거쳐 왕궁으로 돌아온다.정조는 8일 간의 화성행차를 김홍도 등에게 명을 내려 그림으로 그리게 하는데요, 바로 <화성원행의궤도>입니다. 여기서 잠시 화성이라는 이름을 살펴보면요, 현륭원이 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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