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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왕의 초상 |
| 요약 |
왕의 초상
조선왕조의 본향 전주... 전주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을 모신 건물로서 남한에 남아있는 유일한 태조 진전이며 , 조선시대에 제작된 어진 중 전신상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여러차례의 전란과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태조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문화적 자긍심의 도시, 전주. 지난 2005년 5월17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태조어진과 경기전을 주제로한 “왕의 초상”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신성한 공간에 모셔졌던 왕의 초상이 세월의 변화에 대응하여 대중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세대를 초월하여 마주했던 자리, 이 기록은 보름간의 주요전시자료를 중심으로 경기전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해보고 500년 조선왕조 그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돌아보고자 기획되었다. 조선왕조의 개창자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이다. 이 사실은 1387년 이색이 지은 이자춘신도비의 첫머리에 밝혀져 있다. 왕의 초상인 어진은 곧 왕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왕조 건립 이후, 일찌기 태조와 인연이 깊은 전국의 주요지역에 태조 어진을 모신 태조 진전이 건립되었는데, 그 중 태조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전주에 세움으로써 전주가 왕실의 본향으로서,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대한제국 선포직후인 고종때에 전주이씨의 시조묘인 조경단을 새우고 오목대에 비와 비각을 건립한것은 조선 왕실의 발상지인 진주를 성역화하여 내우외환에 처해있던 조선왕실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했던 국왕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는 1335년 10월11일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22세에 고려 관직에 올랐으나 동북지방 출신의 청년 장수가 고려에 뿌리 내리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수도가 함락되자 이성계는 휘하의 군사 2000여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작전에 참가하여 큰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원병과 왜구와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고 1380년 9월 남원운봉의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격파하는 등 타고난 군사적 재능으로 그 세력을 키워갔다. 명과의 대립으로 최영의 주장에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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