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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곡운 구곡도 |
| 요약 |
곡운 구곡도
한국의 자연경관 문화에는 3경, 8, 9, 10, 12이 있는데 8경은 약 98처, 9곡은 6처가 파악되고 있다. 9곡은 우리고장인 강원도 화천의 곡운구곡, 강원도 삼척의 무릉구곡, 충청도 괴산의 화양구곡, 선유구곡, 고산구곡, 황해도 해주의 고산구곡등 6개처가 밝혀지고 있다. 구곡의 연원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1130~1200)의 무이구곡도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건영부 숭안현 오부리에 살았고 41세에 건양땅 노봉아래 운곡에다 회암을 짓고 숭안에서 80리를 왕래 하였다. 1183년 그가 54세때 오부리 무이산하 30리 되는 곳에 무이정사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이듬해 1184년 7언절구의 무이도가를 지었다. 주자는 무이정사잡영서에서 이곳의 산세, 정사의 위치, 근처의 승경, 인간에 끼치는 자연의 영향, 동호인, 제자들과의 생활을 기술하면서 12수의 시를 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의 묘사는 시가의 모티브로서 오래 전부터 관용되었으나, 1곡에서 9곡까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자연모사 방법은 구곡도 또는 구곡가라는 특수한 산수화와 묘사시의 장르를 이루게 된다. 조선왕조는 건국과 더블어 그 국가이념을 주자의 성리학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구곡도의 형식은 주자의 철학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행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의 구곡도의 연원은 선초 안평대군의 무이정사에서 찾고, 퇴계의 무이구곡도와 율곡의 고산구곡도에 이르러 정착되며, 곡운 김수증(1635~1705)의 곡운구곡에 맥통 된다 할 것이다. 곡운구곡도는 지금의 강원도 화천 용담리 일대에서 3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한 곡운 김수증 선생이 빼어난 경치에 이름을 붙인 뒤 당대의 화가 조세걸에게 그리게한 작품으로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실경산수화가 실제 경치와 유일하게 일치하는 작품으로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화천군과 화천문화원에서는 '99년 8월12일부터 8월14일까지 화천문화예술회관에서 동아세아 은둔자들의 미의식이란 주제로 국내학자 60명, 미국, 일본, 중국등 5개국의 20여명의 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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