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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통일 신라의 예술 |
| 요약 |
통일 신라의 예술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 본존불은 1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우아하고 근엄한 미소를 잃지 않고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흐르는 듯한 유려한 인체의 조각, 그 사실적 표현, 그리고 주변 자연 환경과의 조화,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는 뛰어난 건축술 등으로 인해 민족 문화 유산의 최대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성덕 대왕 신종의 경우, 그 장중하고 맑은 소리는 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심금도 울리고 있다. 하늘아래 백성은 성덕대왕 신종의 제작에 얽힌 설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성덕대왕신종의 이야기는 많이 전파되어 나갔다. 신라 중기에는 경주 분지에만도 1백여 개 이상의 사찰이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불사는 당시 최고의 건축 기술과 수많은 민중들이 동원된 국가 최대의 사업이었다. 이러한 불사에 의해서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석굴암과 성덕대왕 신종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천 년이 지나도록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남아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전해 주는 이러한 문화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것은 생산을 담당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여 더 많은 생산을 해냈던 민중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민중의 힘에 의한 생산력의 증대 없이 이와 같은 거대한 불사가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당시 신라인들의 창조력과 지혜는 석굴암의 건축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에 있는데, 자연 석굴에 불상을 안치한 것이 아니다. 산 아래에서 거대한 암반을 정확한 규격으로 자른 다음 이것을 석굴이 있는 곳에 끌고 올라와 쌓았다. 더욱 우리들을 경탄케 하는 것은 건축술에서 보여 주는 신라인들의 지혜로움이다. 과학적인 건축 능력과 지혜가 가난과 배고픔 속에 허덕이고 있는 백성들의 식량을 제공하거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짓는 데 쓰이지 않고 실생활과는 관계가 없는 불교 건축물을 짓는 데 쓰여 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당시의 시대 정신과 사회 경제적 배경에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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