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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신유박해 |
| 요약 |
신유박해(1801)
진보적 지식인들을 수용하여 새로운 권력 구조를 시도하였던 정조 때에는 천주교에 대하여 온건한 편이었다.
그러나 정조가 사망하자, 새로이 정권을 잡은 보수 세력은 정조가 불안해했던 정치현상을 일신하고, 보수적 권력 구조를 강화하고자 1801년 진보적 정치 세력과 그들과 연계된 천주교도에 대하여 대규모의 숙청를 단행하였다.
신유사옥이라고도 하는데,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의 천주교도가 처형 혹은 유배되었다. 천주교와 직접적 관계가 없었던 실학자 박지원, 박제가 등도 관직에서 쫓겨났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지 15년만에 강행된 신유박해에서 50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천주교가 급속히 전파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유박해가 종교적 탄압일 뿐 아니라 정치적 탄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대규모의 박해가 가해졌는데, 부패 타락한 양반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단행된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교세는 하층민의 호응을 받아 가며 계속 확대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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