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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신분제 동요에 따른 사회 변화상 |
| 요약 |
신분제 동요에 따른 사회 변화상
양인이나 천민이 신분을 상승시켜 양반이 되면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요? 우선 양역(良役)을 지는 양인 인구의 감소로 인해 군역제의 운영에 변동을 초래했습니다. 양인의 신분상승의 주목적은 군역을 면하는 데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군역은 천역화(賤役化), 즉 천인들이 하는 역이 되었으며, 양인들은 신분상승을 통해 역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는 균역법과 군포계(軍布契)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균역법은 군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정 한 사람에게 1년에 군포 2필을 받던 것을 1필로 감해준 제도였으며, 군포계는 군역을 담당해야 할 양인이 점점 없어지자 그 마을 공동 책임 아래 거두어들이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양인이나 천인의 신분상승으로 인한 또 다른 변화상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신분을 상승시킨 사람들이 유향소의 좌수나 별감 같은 향임직에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향임직에 새롭게 진출한 자들은 사족들의 명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향안(鄕案)에 이름을 올려서 상승된 지위를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따라서 향안에 이름을 올리는 행위 즉 향안 입록(入錄)을 둘러싸고 기존에 향안에 입록되어 있었던 구향과 새로이 입록을 하려는 신향 간에 향전(鄕戰)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신분제는 지주-전호제와 함께 중세사회를 유지했던 두 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신분제가 18세기 중엽 이후 동요를 일으켜 19세기에 이르면 해체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 현상을 ‘신분제의 문란’이라고 부정적으로만 이해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새로운 계층이 성장하는 과정이었지요. 말하자면 신분제의 동요와 붕괴는 곧 중세적 질서의 동요와 붕괴를 의미하였으며 이는 동시에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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