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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조선후기의 농민투쟁 |
| 요약 |
조선후기의 농민투쟁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동 속에서 농민층의 사회의식은 점차 고양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와 지주층의 봉건적 착취에 대한 저항도 점차 증가하였다. 집단적인 봉기를 통해 지방관아나 국가권력에 대항한 이른바 민란과 농민전쟁은 이러한 저항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봉기만이 아니라 일상적이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지배층에 저항하고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저항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은 우선 봉건관리나 지주에 대해 여러 가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訛言이었다. 이는 단순한 거짓말이나 과장이 아니라 봉건지배층의 비리를 폭로, 규탄하는 것이었다. 다음은 山呼나 擧火였다. 산호는 동헌이 보이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 큰 소리로 수령이나 서리들의 학정을 외쳐 고발하는 것이었고, 거화는 밤에 횃불을 들고 산에 올라가 부정수탈에 항의하는 내용을 소리 높여 외치는 횃불시위였다. 또한 부정한 관리나 탐욕스런 지주 집에 농민들의 요구와 욕설을 담은 전단을 살포하는 투서도 횡행하였다. 이러한 것이 저항의 주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면 농민층은 여기서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집회를 열고 자신들의 불만과 요구를 여론화하기 시작하였다. 즉 19세기의 농민들은 鄕會를 열어 관청에서 부과하는 조세에 대해 부과과정의 공평성을 감시하고 조세상납에 있어서의 공동대응을 모색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농민들은 이 자리에서 수령의 탐학, 이서층의 수탈 및 관청에서 부과한 조세액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한편 이의 시정을 모색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고을 행정의 부당성과 관리의 부정ㆍ비리를 시정하기 위해 해당 고을이나 감영에 자신들의 요구를 청원서의 형식으로 올리기도 하였다.
이른바 呈訴운동이었다. 농민들의 집회나 정소는 대부분 수령이나 이서배에 의해서 거부되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민들은 고을의 행정에 참여하려는 의식을 키워갔고 그것은 최종적으로는 민란이라는 봉기의 형태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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