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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미륵신앙 |
| 요약 |
미륵신앙
석가모니불이 그 제자 가운에 한 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 1인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을 근거로 하여 발생한 신앙이다. 미륵은 예언을 받은 후 도솔천에 올라가 천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고 불경에서 말하는데, 이에 따라 신앙의 형태 역시 미륵보살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죽어서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기대하는 上生 신앙과 보살이 빨리 강림하기를 기원하는 下生 신앙으로 나뉜다. 삼국 시대 이래로 우리 나라에서는 미륵 신앙이 면면히 이어지면서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산 이름, 절 이름에 미륵, 도솔, 용화 등이 쓰이는 곳은 전부 미륵 신앙과 관련이 있다. 백제에서는 6세기 이후부터 미륵신앙이 널리 퍼져, 미륵사, 미륵불광사 등의 절이 세워졌고, 미륵반가사유상의 조상이 많이 이루어졌다. 신라에서도 미륵신앙은 널리 퍼져 있었다. 신라 최초의 절인 흥륜사는 미륵불이 주불이었고, 화랑도 역시 미륵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특히 신라에서는 불국토 사상과 관련하여 왕을 부처에 귀족-그 연장선에서 화랑을 미륵으로 관념하였고, 화랑들은 미륵불을 신앙하면서 미륵의 지도와 보호를 빌었다. 통일 신라 때도 미륵 신앙은 널리 성행하여 삼국유사에는 이와 관련된 설화가 다수 전해지고 있으며, 금산사의 미륵전이 세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가 미륵불을 자처했다는 것은 - 미륵불을 자처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을 획득하려고 했던 것은 당시 사회에 미륵신앙이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고려 시대에는 선종이나 화엄종 계통의 사원이 흥성하는 과정에서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지만 미타 신앙, 관음신앙과 함께 민중들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하던 고려 후기에는 민간에 미륵신앙이 상당히 유행한 듯하다. 미륵의 하생을 염원하면서, 지방관을 포함하여 군민이 함께 향나무를 해변에 묻어두는 埋香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으며, 우왕 때는 자칭 미륵불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미륵신앙은 그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으나, 후기에 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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