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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최충헌의 봉사10조 |
| 요약 |
최충헌의 봉사10조 12세기 고려 문벌귀족사회가 무르익어가면서 문벌귀족들은 점차 자신들의 이익만을 앞세우고 사치향락 생활에 빠져 들어갔다.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흉년에도 아랑곳없이 세금이나 지대를 가혹하게 징수하고 역을 과중하게 징발하였다. 또 이를 위해 조정의 요직을 독차지하려 함으로써 정치의 기강도 아주 문란해졌다. 이 시기 상황을 잘 보여주는 다음 사료를 보자
근래 와서 관리들의 기강이 해이하고 문란해진데다가 관리를 징계하거나 개혁하는 일이 없으므로, 관리들의 공무는 부지런히 하지 않고 다만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있다. 권세가와 결탁하여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함부로 거두어들이며 농업을 권장하는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그리고는 쓸만한 재물이 있으면 모두 빼앗아간다. 백성들이 이를 거역하면 곧 다른 일로 트집을 잡아 심한 매질을 하여 목숨을 잃게 하니, 아무리 억울하고 원통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간혹 억울함을 처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도 권력있는 자들의 청탁으로 시행할 수가 없으니, 백성을 좀먹는 해독이 나날이 심해지고 달마다 불어난다. 관리들이 이러니 백성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자겸은 그의 친척들을 요직에 두루 앉히고 벼슬자리를 팔아 그의 무리를 조정에 많이 심었고, 스스로 국공(國公)이 되어 그에 대한 대우를 왕태자와 대등하게 하였다. 자신의 생일을 인수절(仁壽節)이라 하고 전국에서 이를 축하하는 글을 전(箋; 신하가 왕에게 바치는 글)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자겸의 여러 아들이 앞 다투어 큰 집을 지으니 그 집들이 거리에 이어졌다. 그 세력이 더욱 성하게 됨에 따라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고가고 사방에서 바치는 음식과 선물이 넘치게 들어오니, 썩어서 버리는 고기가 항상 수 만근이었다. 남의 토지를 빼앗은 뒤 종들을 시켜 수레와 말을 빼앗아 실어가니 가난한 백성들이 모두 수레를 부수어 버리고 말을 팔아 버리니 도로가 소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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