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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왕규의 난 |
| 요약 |
왕규는 광주 사람으로 태조를 섬기어 대광 벼슬을 했다. 태조가 왕규의 두 딸을 후궁에 받아들여서 하나는 열 다섯째 왕비로, 다른 하나는 열 여섯째 왕비로 삼았는데 그 중 열 여섯째 왕비가 아들을 하나 낳았으니 광주원군이다. 혜종 2년에 왕규는 왕의 아우 왕요와 왕소가 반역을 음모하고 있다고 참소하였으나 혜종은 그것이 허위임을 알고 그들을 더욱 후하게 대우하였다. 사천공봉(司天供奉) 최지몽이 왕에게 말하기를 “유성이 자미원을 침범하였으니 나라에 반드시 역적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혜종은 왕규가 왕요와 왕소를 모해하려는 징조로 생각하고 맏공주를 왕소의 처로 주어서 그의 친족을 강화하였으므로 왕규가 그 음모를 수행하지 못하였다. 또 왕규는 광주원군을 왕위에 세우려고 어느 날 밤에 왕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그 도당을 침전에 잠입시켜서 대역을 감행하려 하였다. 이 때 혜종이 잠을 깨여 한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시종들을 불러서 끌어내게 하고는 다시 묻지 않았다. 또 하루는 혜종이 병환으로 신덕전에 있었더니 최지몽이 또 말하기를 “ 곧 사변이 있을 것이니 제 때에 처소를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혜종이 가만히 중광전으로 옮겼더니 그날 밤 왕규가 그 도당을 인솔하고 벽을 뚫고 들어갔으나 침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왕규가 최지몽을 보고 칼을 뽑아 들고 욕하면서 말하기를 “임금이 침소를 옮긴 것은 반드시 네가 한 짓이다.”라고 하였다. 최지몽이 끝가지 잠자코 있으니 왕규는 물러갔다. 혜종은 왕규가 한 일을 알았으나 역시 죄를 묻지 않았다. 왕규는 일찍이 대광 박술희를 증오하다가 혜종이 죽자 정종의 명령을 위조하여 그를 죽였다. 이에 앞서서 혜종의 병이 위독하였을 때 경종이 왕규가 반역할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비밀히 서경 대광 식렴과 사변에 대응할 계책을 상의해 두었었다. 그러므로 왕규가 반란을 꾸미려고 하였을 때 식렴이 군사를 인솔하고 서울로 와서 숙위하여 왕규가 감히 반역 행동을 못하게 하였다. 이에 왕규를 갑곳으로 추방하고 뒤로 사람을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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