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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기묘사화 |
| 요약 |
기묘사화(중종 14년, 1519) 중중 때 정계에 입문한 조광조는 성리학에 입각한 유교정치를 철저하게 시행하려고 하였다. 중종 또한 이러한 조광조의 개혁정책에 호응하여 아래와 같은 정책을 실시하였다.
1. 도학정치 : 왕 스스로 수양에 힘쓰고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의미하였다. 국왕이 도덕적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 밑의 관료들 역시 도덕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철인(哲人)정치를 주장
2. 현량과(賢良科) 실시 : 덕행 있는 사람을 국왕이 추천에 의거 직접 등용 → 중종 14년 28명의 사림 등용 → 사림파의 정치적 기반 확대 3. 불교 또는 도교와 관련된 종교 행사의 폐지 → 소격서 폐지 4. 소학 교육 강화 : 성리학적 사회 질서 강화 5. 향약의 전국적 시행을 추진 → 유교적 풍속 교화 6. 위훈삭제(僞勳削除) 추진 : 반정공신들 가운데 거짓 공신이 있으니 이들의 위훈(僞勳)을 공신록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 심정, 홍경주 등 74명의 관직과 위훈을 박탈(전체 공신의 3/4에 해당) 이러한 정책은 조선정치가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나 조광조의 개혁정책이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훈구파의 집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오래 동안 권세를 누려오던 훈구파는 조광조를 몰아낼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홍경주·남곤·심정 등은 후궁을 움직여 궁중의 나무 잎에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 성을 가진 자가 왕이 된다는 뜻.
走+肖=趙 → 조광조)이란 꿀물을 무수히 바르게 하여 벌레로 하여금 갉아먹게 하였다. 이를 궁녀들이 왕에게 바치게 하였고, 또 ‘조광조 일파가 당파를 조직하여 조정을 문란하게 한다’고 거짓으로 고하였다. 한편 조광조의 혁신 정책 추진에 대해서 일면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의 근본적 개혁 주장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있던 중종은 결국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광조를 투옥시켰다. 그리고는 사약을 내렸다. 죽기 전에 그는,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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