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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시대의 교육 |
| 요약 |
고려시대의 교육
ㅡ신라의 자멸로 전쟁 없이 평화 속에 수립된 고려는 신라의 문물제도를 크게 수정함이 없이 계승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 역시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고, 교육은 당나라 제도에 따른 유교식이었다.
고려시대의 학교제도는 930년(태조 13)에 경학(京學)을 세웠고, 992년(성종 11)에 국자감(國子監)을 창립하였으며, 1053년(문종 7)에 사학(私學)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최충(崔沖) 등 12인이 사설의 학당을 개설하게 되어 소위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를 이루게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는 동서학당(東西學堂)을 세웠고 이는 개경에 설치한 중등 수준의 관학으로서 지방의 향교와 같은 수준이었다.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있었으며, 국자감과 향교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선왕묘(文宣王廟)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학문을 강(講)하는 명륜당(明倫堂)이 있었다. 특기할 것은 중국 후주인(後周人)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광종 9) 과거제를 실시한 일이다. 과거제가 시행됨에 따라 유학이 흥하게 되고 대유학자와 대정치가가 나오게 되었다.
(1)전기
①태조: 신라 6두품 계통의 학자를 중용하여 개경·서경에 경학 설립, 학보 설립·운영
②성종
㉠중앙: ‘국자감’은 고려의 최고 중앙 교육기관으로 성종 11년에 건립되었다. 국자감의 편 제는 육학으로 이루어졌는데, 국자학·태학·사문학의 유학학부 삼학과 율학·서학·산 학의 기술학부 삼학이 그것이다. 입학자격은 유학학부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의 순으로 입학자격에 신분의 차등을 두었으며, 기술학부는 이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 들이 입학 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 정원은 유학 학부가 각 300인이었으며, 기술 학부는 일정치가 않았다. 그러나 이 정원은 당시 국가재정이나 지원자 수를 두고 볼 때 과도한 규모였으며, 입학 정원은 항시 미달상태였다. 재학연한은 유학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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