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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남인과 북인의 유학 |
| 요약 |
남인과 북인의 유학
선조 때에 동인과 서인으로 분리된 붕당은 후에 정여립 모반사건을 계기로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갈리게 되었다. 남인은 이황의 문하이고 북인은 조식 문하이다. 이황은 을사사화 이후 조정과 관직을 떠나 학문에 전념하였지만 제자들 중에는 정치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유성룡은 재상으로서 임진왜란을 치러내기도 했는데 평양을 탈환할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가 있으며 김성일은 부제학과 경상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정구는 대사헌이 되었고, 이황을 오래 사사한 조목은 늦은 나이에 공조참판을 지냈다. 나중에 유성룡 계통은 병산서원을 중심으로 병파를, 김성일 계통은 호계서원을 중심으로 호파를 형성하였다.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정경세등은 예학을 매우 발달 시켰다. 남인들은 주로 경상도 북쪽지역에서 많이 활약을 했다고 할 수가 있다. 반면에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북인들은 경상도 남쪽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많이 펼쳐 나갔다.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퇴계학파는 대개 남인계열이 되었으며 학문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정치에서는 강경노선을 걷지 않으면서 꾸준한 정치생명을 이어나갔다고 할 수가 있다. 반면에 북인들의 특징은 강경입장을 많이 고수하면서 색깔 있는 정치를 많이 펼쳤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북인들의 강경정치는 결국 북인세력의 정치생명을 단축 시켰다고 할 수가 있다. 산림처사로 기개와 절의로 의연한 풍모를 보여 주었던 조식 문인들 중 다수가 정계에 진출하였다. 동인이 남·북으로 갈릴 때 북인에는 정인홍·최영경·정여립··이이첨 등이 주류를 이루면서 조식의 사상을 계승 하였다. 북인은 남인에 비해 정치적 입장이 강경해 낭패를 보기도 했지만, 정치적 수완도 뛰어났다. 특히 북인들은 임진왜란때에 의병활동을 많이 펼치면서 국가를 위한 충절을 지켰다는 것은 훌륭한 점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때에 실권을 잡은 후에는 강경책을 오랫동안 펼치다가 결국 정치생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할 수가 있다. 북인 계열은 선조·광해군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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