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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고려와 여진과의 관계 |
| 요약 |
고려와 여진과의 관계
고려가 처음으로 동북 방면의 여진을 대규모로 정벌하기 시작한 것은 문종 34년(1080)으로, 이 때 여진의 세력을 크게 꺾은 바 있다. 그러나 새로 일어난 동여진의 완옌부는 더욱 성장하여 그 세력이 두만강 부근까지 뻗어 오게 되었다. 이에 고려는 이 지역에 군사를 보내 정벌을 시도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여진은 기병인 데 비해 고려군은 주로 보병인데다 그 조직마저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윤관은 기병인 신기군과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된 별무반을 조직하였다. 별무반은 신분을 초월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승려들도 많이 있었다. <별무반 12세기 초 완옌부의 추장 우야소는 고려에 복속하던 여진 부락을 공략하며 계속 남하하여 평안도 정주의 천리장성 부근까지 이르렀다. 이에 고려는 임간을 동북면 병마사로 삼아 여진을 토벌하게 하였으나 패하였다. 고려는 기병인 여진군을 보병만으로는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윤관의 건의에 따라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 및 잡종부대로 구성된 별무반을 새로이 편성하여 여진정벌을 준비 하였다.>
윤관은 1107년에 17만 대군을 이끌고 기습 작전으로 여진족을 소탕하고 나서 동북9성을 쌓았다. 동북9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있는데 위치가 함흥이라는 설과 두만강 일대라는 설이 있다. < 여진족 여진족은 본래 만주의 지린 성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연해주 방면에서 생활하였다.여진족은 발해시대 이후 점점 남쪽으로 퍼져나와 신라말·고려초에는 동북방면으로 함경도 일대와 평안도 일대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이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동북 방면의 여진을 동여진이라 하고, 서북 방면의 여진을 서여진 이라 불렀다. 여진족은 그들의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또 대륙의 정세변화에 따라 고려에 조공)하여 필요한 물자를 교역하기도 하고, 때로는 변방을 침략·약탈하기도 했다. 문종 때에 는 고려의 군현으로 편제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완옌부를 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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