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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개혁정치 |
| 요약 |
공민왕의 개혁정치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원나라의 지배에 반대하면서 고려의 자주성 회복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내부적으로는 부패한 귀족문화를 바로잡고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토지제도의 개혁도 도모하였다.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는 토지제도를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 전민변정도감이다.
<전민변정도감 고려 후기의 개혁 기관으로서, 권문세족이 토지와 노비를 늘려 국가 기반이 크게 악화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 특별기구이다. 이에 따라 권문세족이 부당하게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양민으로 해방시켰다. 이를 통하여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재정 수입의 기반을 확대하려고 했다. 전민변정도감이 처음으로 설치된 시기는 고려 원종 때였다. 이후 존폐를 거듭하다가 공민왕 때에 왕의 신임을 받던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으며, 신돈은 또한 스스로 판사가 되어 강력한 정책을 취하여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비를 양민으로 해방해주었다. >
공민왕은 무엇보다도 원나라의 간섭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원나라의 관제를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이러한 과정에 일어난 대표적인 업적이 정동행성의 폐지이다. 또 무력으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으며, 더 나아가 요동지방을 공격하였다.
< 정동행성 정동행성은 원나라 간섭기에 일본원정을 위해서 설치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원정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형식상의 기구로서 원나라에 하정사를 파견하는 등 의례적 기능만을 수행하였다. 이후에는 고려의 내정에 적극 관여하는 기구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원나라는 정동행성의 고위직을 임명하여 보내, 제26대 충선왕의 개혁을 방해하면서 고려 상급 관리들의 처벌을 원나라에 보고할 것과 관리수를 줄이고 노비 제도를 원의 범식대로 고치도록 하였다.>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은 친원파들의 반발로 중단될 위기까지 놓이게 되었으나 대내적으로 왕권을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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