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키워드 : |
|
|
| 소개글 |
조선 세조에 대하여 |
| 요약 |
세조(1427 - 1468)
단종세력을 하나둘 제거하고 1453년 그는 7대 임금 세조로 등극하였다. 세조는 정치를 잘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벗으려고 백성들을 잘 돌보았는데 사치풍조를 없애고 궁궐의 문화까지 검소하게 만들었으며 왕권을 강화하여 의정부의 정책 결정권을 폐지시키고 6조의 직계제를 부활시켜 의정부의 기능을 약화하였다. 의정부의 기능이 강하다는 것은 바로 왕권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세조는 먼저 의정부의 기능을 약화시키면서 왕권을 확립시켜 나갔다. 국방력 강화를 위하여 호적, 호패제도를 부활 시켰으며 두만강 건너 여진족을 소탕하고 서북면을 개척 등 국토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였다. < 의정부: 의정부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합좌기관이었다. 3정승은 국가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하고 그 합의를 거쳐 정사를 왕에게 전달하며, 왕의 결재는 역시 의정부를 거쳐서 해당 관서에 전달되었다. 의정부 서사제 에서는 의정부가 중심 정무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육조 직계제가 시행되었을 때에는 왕의 자문기관의 역할을 하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3명의 의정부 정승은 그 기능상으로는 그 지위가 동일하며, 모든 결정은 전원일치를 전제로 하였다. 의정부의 권한이 강할 때는 왕권이 약해지기 때문에 의정부의 권한과 왕권과는 서로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가 있다. >
문화적으로 세조는 불교를 숭상하여 1461년에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경을 간행토록 하였으며 태조이래 4대 임금을 찬양하기 위하여 '국조보감'을 만들고 세종때 시작한 '오례의'를 완성하였다.
또 세조는 함경도에서 일어났던 이시애의 난을 진압시켜 지방의 혼란을 안정시켰다. <이시애의 난 세조의 정책에 반대해서 함경도에서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이다. 이시애는 4개월에 걸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진압되고 이시애는 사형에 처해졌다. 이시애는 세조의 강력한 집권체제 확립에 대한 지방민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같이 해 그들을 단결시키고, 자신이 일으킨 난을 의거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등 세조의 집권책에 반발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 |
 |
|
|
 |
|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전재및 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하단의 저작권 침해신고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