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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
원 지배하의 상황 |
| 요약 |
원 지배하의 상황
몽고의 침입에 약 40년간 저항을 했던 고려는 원종때에 완전히 몽고에게 항복을 하였다. 원종 은 고려가 몽고와의 전쟁을 끝맺고 원 간섭기에 들어선 이후 최초의 군주이다. 그는 1235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1259년 강화를 요청하러 몽고에 갔다가 고종의 죽음으로 이듬 해 귀국해 즉위하였다. 그러나 무신정권의 권력자인 임연은 친원 정책을 펴는 원종을 폐위 시켰다. 하지만 대세는 원나라에 항복하는 쪽으로 기울었으며 고려는 몽고에 항복을 하고 개경으로 환도 하였다.하지만 고려가 원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데에 삼별초가 반발했으나 3년 만에 진압하였다. 충렬왕대에는 일본정벌에 필요한 제반 경비와 인원을 부담해야 했다. 몽고는 두 차례에 걸쳐서 일본원정을 하였다. 몽고의 1ㆍ2차 일본정벌은 비록 실패했지만 고려가 원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원의 고려 간섭을 보다 유연하게 하였으며 왕권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여원 연합군의 1차 일본정벌 원은 군비를 확보한후 1274년 약 3만의 병력으로 합포를 출발하여 규슈의 하카타를 공략하였으나 태풍으로 실패하였다. 이때 고려에서는9백척의 전함과 많은 병력을 동원 하였다. 여원 연합군의 2차 정벌 남송을 멸망시킨 원은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2차 원정의 준비를 하였다, 1281년 2차 원정에 나섰는데 마산에서 출발한 여원 연합군인 동로군은 4만의 군대에 전선은 9백척이었다. 2차원정역시 일본의 치열한 방어와 태풍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
충렬왕은 부마지위를 이용하여 국왕측근세력과 재추 및 일부 신진관료들을 기반으로 왕권을 확립함으로써 정치개혁에 대한 힘도 얻게 되었다. 원나라의 간섭기 동안에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바뀌었다. 원은 공녀하 하여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 갔으며, 금, 은, 베를 비롯하여 인삼, 약재 등 특산물을 징발하여 농민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또 매를 비롯하여 인삼, 약재 등 특산물을 징발하여 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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